Tuesday, March 1, 2011

정선 감자 - 산골 여름의 간식

감자는 Potato, 고구마는 Sweet Potato로 불리지만 감자와 고구마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감자는 가지,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의 식물이고, 고구마는 메꽃과 식물이다. 감자에서 우리가 먹는 부위는 땅속에서 자라는 덩이줄기이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티티카카호 주변의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다. 감자가 전세계로 번진 것은 1500년대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안데스에서 캐낸 감자를 유럽에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애초 유럽에서는 감자를 '악마의 식물'이라 하여 먹지 않았다. 그러나 밀에 비해 월등한 수확량을 보이는 감자를 마다할 수는 없었다. 산업혁명기에 감자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주식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는 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이 되었다.
  • 1 구절리쪽에서 내려오는 송천과 임계쪽에서 내려오는 골지천이 합쳐지는 여량면의 아우라지이다. 줄배를 타고 건널 수 있다.
  • 2 정선의 토속음식인 옹심이. 감자를 갈아 조그만 덩이를 만들어 끓인 것이다. 메밀국수를 더하였다.
  • 3 정선 밭의 흙은 곱고 차지다. 그 흙에서 나는 감자도 곱고 차지다.


감자는 식량이다
감자가 우리 땅에 전해진 것은 19세기 초의 일이다. 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순조 갑신·을유(1824~1825) 양년 사이 명천(明川)의 김씨가 북쪽에서 종자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였다. 감자가 우리 땅에 본격적으로 심어진 것은 1890년대 이후이다. 강원도와 함경도, 평안도 등 산간지에서 주로 재배되었다. 품종은 아직 개량되지 않은 자주감자 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감자 재배 면적이 급격하게 늘게 되는데, 일제가 우리 땅에서 쌀을 공출하면서 대체 식량작물로 감자를 보급하였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일본은 ‘남작’이라는 품종을 우리 땅에 도입하였다. ‘남작’은 삶으면 분이 많이 이는 분질 감자로,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 토종 감자'라고 생각하는 그 감자이다. ‘남작’은 1876년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이다. 이 품종을 영국에서 가져온 일본인이 가와다 남작이어서 ‘남작’이라 불리게 되었다.


‘수미’가 남작’을 밀어내다
감자는 우리 땅에서 식량작물로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특별난 식량작물을 키울 수 없는 강원 산간지역에서 요긴하였다. 생산성이 높은데다 수확 후 가공 없이 삶기만 하면 끼니가 될 수 있어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더없이 경제적이었다. 1980년대 이후 감자 가공 산업이 발달하면서 감자 품종에 변화가 왔다. ‘남작’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지역적응성이 뛰어나며 수확량도 많은 ‘수미’가 선택되었다. ‘수미’는 1961년 미국에서 육성한 품종으로 1978년 우리 땅의 보급종이 되었다. 수미’는 점질 감자이다. 삶으면 찐득한 느낌이 드는 감자이다. 남작’에 비해 단맛은 더 있으나 식감에서는 많이 떨어진다. ‘남작’은 강원 산간지에서 잘 자라고 봄에 심어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지만 ‘수미’는 제주에서 강원까지 사철 재배가 가능하다. 지역적응성과 수확량에서 월등한 ‘수미’가 크게 번지면서 현재 한반도 감자의 80% 정도를 이 ‘수미’가 점하게 되었다. ‘수미’의 장점도 있을 것이나 그 부술부술한 식감과 독특한 향의 ‘남작’을 이제 강원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근래에는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감자도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자색 등이 나는 '컬러 감자'가 인기를 얻고 있다.


차지고 고운 흙의 밭
정선에는 논이 거의 없다. 경지 면적의 90% 이상이 밭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밭은 거의가 비탈져 있다. 밭에는 옥수수 아니면 콩 아니면 감자가 심어져 있다. 정선의 감자 재배 면적은 600헥타르 정도에 이른다. 4~5월에 파종하여 7~10월까지 수확하는 여름 재배 작형이다. 대규모 밭보다 조그만 채마밭에 심어진 감자가 더 많아 보인다. 규모가 있는 감자밭에서는 파종과 수확을 기계로 하지만 작은 감자밭에서는 아직 수작업으로 감자를 심고 캔다. 오래 부치던 밭이라 흙이 곱고 차지다. '강원 감자'의 유명세는 여름에도 서늘한 고랭지에서 재배되기 때문이다. 이런 고랭지에서는 병해충이 덜 붙는다. 또 기온이 서늘하니 감자가 서서히 자라 조직감이 단단하고 전분에 층이 지지 않아 곱다. 2010년 올해는 봄의 이상저온과 여름의 이상고온으로 감자의 작황이 좋지 않다. 그러나 맛은 여전하였다.

영암 무화과 - 남도 늦여름의 맛

무화과나무는 아열대 식물이다.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20세기 들어서의 일로 알려져 있다. 무화과나무는 17세기 유럽에서 일본으로 전래되었는데, 우리 땅에 오래 전부터 남녘 농가 뒷마당 등에서 자라는 품종이 일본 유래종인 '봉래시'인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 남녘에 넓게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화과나무는 전세계에 800여 품종이 있으며 국내에 재배되고 있는 것은 '봉래시', '마스이도후인', '바나네' 세 품종이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도 '마스이도후인'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흔히 '도후인'이라 부른다. '도후인'은 1970년 일본이 미국에서 도입하여 육성한 품종이다.
  • 1 8월 말부터 수확되는 '도후인'이다. 국내 재배 무화과 중에 이 품종이 제일 많다.
  • 2 무화과는 꽃이삭이다. 저 둥근 꽃이삭 안에 꽃이 있다. 즉, 과일이 아니다.
  • 3 읍내에 있는 영암군 상징물이다. 풍요로운 농촌을 표현하였다. 뒤로 보이는 산이 월출산 천황봉이다.


과일이 아니다
무화과(無花果)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꽃이 없는 과일"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잘못 붙은 이름이다. 우리가 먹는 무화과는 과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그란 무화과 안에 총총히 박혀 있는 가느다란 실 같은 줄기가 꽃이다. 그러니까 이 꽃을 두툼한 꽃이삭이 싸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이 꽃이삭과 꽃을 과일이라 생각하고 먹는다. 무화과를 먹을 때 잘게 씹히는 알갱이가 씨앗이다. 영암무화과클러스터사업단의 공동 브랜드가 "꽃을 품은 무화과"인 것은 그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무화과는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마다 하나씩 달린다. 봄이면 아래에서부터 무화과가 달리기 시작하여 여름이 되면 먼저 열린 것이 익는데, 여름에도 계속 나뭇가지 끝으로 새 잎이 나오면서 무화과가 맺혀 늦게는 11월까지 무화과를 거둘 수 있다. '도후인'은 8월 말부터 나와 11월 중순까지 딸 수 있으며, '바나네'도 비슷하다. '봉래시'는 10월 들어서야 거둘 수 있으며 11월 상순까지 딴다. 늦은 가을에 새로 나온 무화과는 겨울을 넘기고 봄에 익기도 하는데, 우리 땅에서는 이런 무화과를 보기 어렵다.


아열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
전남 영암군은 남녘의 땅이다. 서쪽으로 목포, 남쪽으로 해남, 강진과 맞닿아 있다. 영암에서도 무화과나무가 주로 재배되는 지역은 삼호면이다. 삼호면은 위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아래로는 영암호가 있어 흡사 서쪽으로 뻗은 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낮은 구릉이 흩어져 있고 그 구릉 사이사이에 좁은 평야가 있다. 여름엔 덥고 습하며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다. 아열대 식물인 무화과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영암에 무화과나무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6년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1970년 삼호농협 조합장인 박부길 씨와 그의 부인인 최수자 씨가 외국에서 무화과나무를 가져와 경제 작목으로 퍼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지금의 주력 품종인 '도후인'이 도입되었다. 영암군은 2010년 현재 600여 농가가 300헥타르의 면적에서 무화과나무를 재배하고 있으며 연간 4,000여 톤의 무화과를 생산하고 있다.


새벽에 하는 무화과 수확 작업
무화과는 수확 작업이 특히 고되다. 새벽 4시쯤에 어둠 속에서 따기 시작하여 해가 뜨면 작업을 끝낸다. 무화과나무 잎사귀에 긁히면 가렵고 시간이 지나면 빨갛게 발진이 일어 쓰리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긴 바지와 긴 소매의 윗옷을 입거나 토시를 한다. 또 무화과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위생장갑을 또 낀다. 여름 뙤약볕에 이런 중무장을 하고서는 버티지 못하니 새벽 일을 하는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남녘에서만 자라고 재배 면적도 많지 않아 무화과는 그리 친숙한 과일이 아니다. 또 무화과는 쉬 물러져 냉장유통을 하여도 매장에 하루 이상 둘 수가 없어 유통업체에서 적극적으로 판매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생산 현지에 가지 않으면 쉬 맛볼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냉장유통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수도권에서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웬 열대 과일?" 하며 신기하게만 바라보는 소비자들이 다수이다. 무화과의 매력은 달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향은 그리 진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아릿함이 혀끝을 자극하여 묘한 쾌감을 준다. 햇볕이 더 강렬해질수록 무화과의 당도는 높아지고 향은 짙어진다. 남도 여름 맛에 이만한 진객은 또 없다.

군산 울외 - '나라즈케'의 그 열매

울외는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참외와 비슷한 식물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참외에 비해 단맛이 없고 크다. 생과일로 먹지 않지 않다는 것이 참외와 많이 다르다. 울외는 한국인에게 생소한 작물이다. 그래서 근래에 이 땅에 유입된 작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계통이 참외와 유사하며 참외가 기원전에 우리 땅에 전래된 것을 생각하면, 울외 전래에 대한 기록이 구체적으로 없다 해도, 참외와 같은 경로(중국 유래)로 비슷한 시기(기원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1960년대 개량 참외가 보급되기 전 우리 땅 곳곳에 강서참외, 감참외, 골참외, 꿀참외, 백사과, 청사과, 성환참외, 개구리참외, 줄참외, 노랑참외, 수통참외 등으로 불리던 재래종이 숱하게 있었는데 그 중에 지금의 이 울외도 있었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1 군산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고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울외장아찌도 그 흔적 중 하나이다.
  • 2 울외는 참외와 비슷하다. 생것을 씹으면 단맛은 없고 오이 비슷한 향이 있다. 노각보다 부드럽다.
  • 3 술지게미에 담근 울외장아찌이다. 웬만큼 숙성되어 포장을 위해 술지게미를 거두어놓은 것이다.


울외는 최근에 작명된 것이다
울외는 중국과 일본 등에서는 흔히 먹는다. 越瓜(월과), 菜瓜(채과), 白瓜(백과) 등의 한자로 표기한다. 품종도 다양하여 대과종은 절여서, 소과종은 생채요리를 해서 먹는다. 울외라는 이름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일본에서는 白瓜라고 쓰고 しろ-うり(시로-우리)라 읽는데 일제시대에 그 '우리'[瓜]를 '울'로 따오고 여기에 참외의 '-외'를 붙여 이런 이름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라는 말이 우리말의 '외'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문화 전파에 과연 원류 또는 원조라는 것이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울외는 습기가 많고 더운 지역에서 잘 자라 전남북과 경남 지방에서 주로 재배한다. 4~5월에 모종을 내어 6월부터 수확을 한다. 길게는 9월 초까지 열매를 거둔다. 바닥을 기는 덩굴에 노란 꽃이 피며 줄기의 가시는 억세다. 어린 열매는 녹색이 짙고 익어갈수록 흰색이 강해진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나 국내에는 한 품종만 보인다.


군산과 울외의 인연
전북 군산의 울외 재배 면적은 12헥타르 정도이다. 전국 울외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군산의 울외는 대부분 술지게미절임으로 가공된다. 술지게미는 청주를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를 쓴다. 군산에는 술지게미절임으로 울외를 가공하는 공장이 아홉 곳이나 된다. 울외술지게미절임을 우리말로는 울외장아찌라고 하나, 일본말인 나라즈케로 더 알려져 있다. 군산의 울외장아찌는 일제시대에 이식된 일본 음식이며, 그래서 그 이름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채소절임이 발달해 있다. 채소를 소금, 식초, 된장, 쌀겨, 술지게미 등으로 절여 저장하는데, 이를 츠케모노라 한다. 츠케모노 중에 술지게미로 절이는 것을 나라즈케라 한다. 일본의 나라(奈良) 지방에서 특히 발달한 츠케모노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나라 지방에는 예부터 청주 양조장이 많았는데 양조장에서 나온 술지게미가 흔하여 여기에 채소를 절이는 식품이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다. 술지게미에 오이나 수박, 생강 등을 절이기도 하지만 특히 울외로 절인 것이 유명하여 나라즈케라 하면 울외장아찌만을 특정하기도 한다. 군산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당시 일본식 청주 양조장도 있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라즈케가 군산에 크게 번졌다. 현재도 군산에는 대규모 청주 양조장이 있으며, 울외 가공공장들은 여기서 술지게미를 받아다 울외장아찌를 담는다.


밑반찬으로 어울린다
울외는 살이 물러 따자마자 가공을 하여야 한다. 세로로 반을 갈라 씨앗을 파내고 그 자리에 소금을 채워 하룻밤을 재운 후 다시 물로 씻어 이틀간 꾸덕하게 말린다. 건조한 울외를 설탕을 더한 술지게미에 박아 두면 장아찌가 된다. 짧게는 1주일이면 먹을 수 있다고도 하나 보통은 3개월 이상 숙성을 한다. 일본에서는 술지게미를 수차례 바꾸어주면서 몇 년간 숙성을 하기도 하지만 군산에서는 한 번 담그는 것으로 끝낸다. 오래둘수록 울외장아찌는 색상이 짙어지고 발효 냄새는 강해진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단에는 밑반찬으로 요긴할 수 있는 맛이다.

군산의 울외 재배지역과 가공공장은 성산면 상작마을에 모여 있다. 20여 년 전 이 마을은 파 주산지였다고 한다. 왜 이 마을에 울외 재배 면적이 늘었는지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한 선진 농가가 울외로 고수익을 올리는 '시범'이 있었고,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따라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울외장아찌 가공공장들은 대부분 울외 농사를 직접 짓고 있다. 가공공장 규모는 작고 장아찌 제조법은 아직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최근 일본으로 선진지 견학을 다녀온 농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에서는 일부 울외장아찌가 '명품'으로 팔리고 있음에 놀라워하였다. 군산의 울외장아찌가 일본의 것처럼 '명품'이 될 수 있으려면 한국인의 입맛부터 사로잡아야 할 것인데, 현재로서는 그 길이 멀어 보였다. 상작마을을 벗어나면 군산시내에서도 울외장아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주 감악산 머루 - 한반도 순종의 산포도

머루는 갈매나무목 포도과의 덩굴식물이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로 한반도와 일본, 중국 등지에 자생한다. 우리 땅에 야생하는 머루는 왕머루, 머루, 새머루, 까마귀머루, 섬머루, 개머루 등이 있는데, 이를 두루 머루 또는 산머루라고 한다. 송이와 알이 제법 큼직하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은 왕머루이다. 왕머루는 포도와 거의 흡사하여 산포도라고도 부른다. 현재 머루 또는 산머루라는 이름으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왕머루이거나 이 왕머루에 포도를 교배하여 얻은 개량 머루이다. 파주 감악산의 머루 재배 농민들은 자신들의 머루에 산머루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두루 머루라 하므로 여기서도 머루라 하였다.
  • 1 '감악산 산머루 마을'이다. 보이는 것이 머루밭이고 뒤의 산이 감악산이다. 임진강에서 멀지 않다.
  • 2 머루가 익어간다. 9월 중순이면 웬만큼 익으며 말이면 완전히 익는다. 수확은 9월 말에 한다.
  • 3 5만 원권 지폐에는 신사임당의 '묵포도도'가 그려져 있다. 열매가 동시에 익은 것이 아니니 머루인 것으로 보인다.


'머루포도'란 이름의 포도
머루는 토종 또는 야생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머루가 더 맛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머루라고 하면 건강에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머루포도'라고 불리는 포도가 인기가 있다. 이 '머루포도'는 야생에서 보는 머루보다 송이와 알이 몇 배는 크지만 짙은 먹빛 때문에 머루의 유전형질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먹빛 짙은 서양의 포도 역시 많으므로 시중의 '머루포도'가 곧 우리 토종의 머루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 서양 유래 포도 품종인 머스캣 베일리 에이(MBA, Muscat Bailey A), 스튜벤 등의 포도를 '머루포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머루는 대체로 포도에 비해 달고 신맛이 덜하다. 머스캣 베일리 에이와 스튜벤이 달고 신맛이 덜한데, 그 맛 때문에 상인들이 '머루포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5만 원권 지폐의 머루
머루는 왕머루 또는 그 왕머루의 개량종이라 하더라도 알이 잘고 송이가 크지 않다. 껍질은 얇고 제법 큰 씨앗이 두세 개 들어 있다. 또 과즙이 풍부하고 과육이 물러 씹으면 씨앗이 도드라지게 느껴지고 식감이 좋지 않다. 손으로 뭉개면 짙은 보라색이 쉽게 묻는다. 열매가 맺히는 과정에서 머루와 포도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포도는 알갱이 전체가 동시에 익어들어가지만 머루는 한 송이의 알갱이들이 제각각 익는다. 그러니까 머루는 한 송이에 익은 알과 안 익은 알이 함께 달려 있을 때가 있다. 5만 원권 지폐에 신사임당의 '묵포도도'(墨葡萄圖)가 인쇄되어 있는데, 정확히 하자면 이는 포도가 아닐 수 있다. 익은 알과 안 익은 알이 동시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머루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포도는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과일로 먹기 힘든 이유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고려 가요인 [청산별곡]의 첫 연이다. 여기에 나오는 '멀위'는 머루이다. 우리 땅에 흔히 나는 산열매여서 이 노래에 쓰였을 것이고,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이 머루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머루 재배 역사는 길지 않다. 근대 초기에 포도가 상업적으로 재배되고 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머루는 산야에서 따서 먹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 까닭은, 머루의 보관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머루는 껍질이 얇고 수분이 많아 따자마자 뭉개지고, 또 금방 발효가 일어난다. 생과일로는 상품성이 없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이 머루로 생즙을 내어 판매하는 농민이 하나둘 생기면서 농가의 작물로 머루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향토음식 붐이 일면서 머루 재배 면적이 급격히 늘어났다. 전북 무주와 진안, 강원 평창, 경남 함양 등 대체로 산간지에서 머루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감악산의 산머루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는 감악산을 뒤로 하고 임진강을 앞에 두고 있는 마을이다. 국내 머루 재배 지역으로는 최북단에 든다. 산을 뒤로 지고 있어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일교차가 크면 머루의 당도가 높아진다. 객현리 일대 머루 재배 농가는 40여 호에 이르며 연간 400여 톤의 머루를 거둔다. 1979년 산머루농원의 서우석 씨가 이 지역에서 머루를 처음 재배하였는데 산머루농원이 머루즙과 와인을 제조하여 판매하면서 이웃 농가들도 머루 재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감악산의 머루를 산머루라고 하는 것은 야생의 머루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알이 잘지만 당도는 상당히 높다. 산머루농원에서는 이 머루로 와인을 빚는다.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키는 터널이 있으며 견학과 시음을 할 수 있다. 감악산의 머루는 9월 말에 수확한다.

양양 송천 떡 - 쌀알이 씹힌다

우리 민족은 긴 세월을 쌀을 포함한 여러 알곡으로 죽 또는 떡을 해서 먹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삼국시대 유물 중에 유독 많은 것이 시루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곡물을 가루 내거나 그 알곡째 쪄서 먹은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들이다. [삼국유사]에도 밥보다 떡에 관한 일화가 먼저 나온다. 서기 17년 남해왕이 죽자 노례와 탈해가 서로 왕위를 놓고 양보를 하는데, 탈해가 이르기를 성지인(聖智人)은 치아가 많다고 하니 떡을 물어 시험하자고 제안을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쌀로 밥을 지어 일상식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 즈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밥보다 떡이 더 오래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음식인 것이다.
  • 1 송편을 빚고 있다. 송천의 송편은 손가락 자국을 내는데, 강원도 송편이 대체로 이 모양이다.
  • 2 불린 쌀을 건져내고 있다. 송천의 떡은 국산 쌀로만 만든다. 공장 쌀가루로 만든 떡과 맛이 다르다.
  • 3 송천 마을 뒤의 다락논이다. 논 면적이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식량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빵과 떡의 차이
떡은 쌀 또는 찹쌀로 빚는다. 찹쌀에 비교하여, 쌀을 멥쌀이라고도 한다. 찹쌀은 시루에 쪄서 떡판에 올린 후 떡메로 쳐서 떡을 만든다. 쫄깃한 식감이 있어 찰떡이라 한다. 쌀, 즉 멥쌀은 물에 불려서 가루를 낸 후 찌는 것이 일반적이다. 쌀가루에서 쪄낸 상태의 것을 시루떡이라 하고, 이를 다시 치대어 길쭉하게 뽑은 것을 가래떡이라 한다. 송편은 그 빚는 과정이 조금 다른데, 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하여 소를 넣고 모양을 잡은 후 시루에 쪄낸다. 떡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권에서는 두루 먹는 음식이다. 떡 빚는 방법은 조금씩 다를 것이지만 쌀을 가루내거나 찌는 과정은 거의 같다고 봐야 한다. 서양의 빵과 비교하자면, 곡물가루의 반죽을 구우면 빵, 이를 찌면 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추석, 설이면 반드시 방송에 나온다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는 한계령 동쪽 아래의 한 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다. 물 맑고 숲은 우거져 산천이 아름다우나 이 마을 사람들이 기대어 살 수 있는 논밭은 아주 적다. 마을 뒤로 계단식 논이 있으며 밭은 텃밭 수준을 조금 넘고 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절반 정도의 가구가 떡 빚는 일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예전에는 14명으로 구성된 부녀회가 공동으로 떡 가공 사업을 하였는데, 근래에 영농조합으로 법인화하였다. 마을 입구에는 떡마을 입석이 서 있고 마을 공동 작업장에 떡 체험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추석이나 설이면 방송에 이 마을이 반드시 나온다.


마을과 떡의 인연
지역 유명 음식은 대체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농수산물을 식재료로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간혹 이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두부로 유명한 강릉 초당동은 콩 산지가 아니며, 황골엿으로 이름이 난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도 엿을 만들 수 있는 곡물이 많이 나는 지역이 아니다. 송천리, 초당동, 흥양리 이 세 마을의 공통점을 들자면 먹고살 것이 없는 가난한 마을이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마을 사람들은 식재료를 외부에서 가져와 가공하는 사업을 하게 되는데, 이 가공품이 차츰 인기를 얻으면서 그 지역의 유명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송천리와 떡의 인연은 1971년 한계령에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맺어졌다. 그 길로 설악산과 동해를 찾는 관광객들이 지나다니게 되었다. 송천리 아주머니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아이템이 떡이었다. 안날 밤에 떡을 빚어 광주리에 이고 오색약수와 낙산사, 하조대해수욕장으로 행상을 하였다. 관광객들의 입을 통해 송천리의 떡이 맛있다 소문이 나면서 '송천 떡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이제 송천리 아주머니들은 '앉아서' 장사를 하고 있다.


새벽 2시에 작업을 한다 
송천리 떡은 새벽 2시부터 만들어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4명의 아주머니들이 모두 모인다.(할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분들이 더 많지만.) 전날 물에 불려놓은 쌀을 찌고 빻고 반죽하는 공간은 방앗간과 비슷하다. 여기서 덩어리 떡이 빚어지면 동네 사랑방 같은 작업장으로 옮겨진다. 떡판을 깔고 떡의 모양을 잡고 고물에 버무려 포장을 한다. 이렇게 해서 아침 6시까지 작업을 완료한다. 이어 택배 차가 오고 전국으로 떡이 배송된다. 당일의 떡을 소비자에서 배달하기 위해 밤을 새우다시피하는 것이다. 낮에는 납품 여유가 있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14명의 아주머니들은 거의가 계속 작업을 한다. 그렇게 해서 오후 4시 즈음에 집에 갔다가 한숨 자고 다시 작업을 하게 된다. 행상의 고달픔은 없어졌지만 주문량을 대기 위해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떡이 맛없는 이유
요즘 떡이 맛없다 하는 어른들이 많다. 이유는 공장에서 가공한 쌀가루로 빚은 떡이 많기 때문이다. 공장에서는 쌀의 전분이 변성되지 않게 습식으로 분쇄한다고 하지만 고운 입도의 쌀가루를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온도가 올라가고 따라서 전분에 손상이 오기 마련이다. 또 보관과 이동 중에도 손상이 있다. 이렇게 전분이 변성된 쌀가루로 떡을 하게 되면, 백설기와 시루떡은 퍽퍽하고 가래떡와 절편은 단단하며 찹쌀떡은 뻐득뻐득해진다. 송천리는 쌀로 떡을 빚는다. 찰떡은 입안에서 쌀알이 덜 뭉개진 듯한 느낌을 주며 멥쌀의 떡은 쫀득하면서도 부드럽게 풀린다. 또 전분의 변성이 없어 질긴 느낌이 없다. 가래떡을 예로 들자면, 공장 쌀가루 떡은 '질긴 쫀득함'이고 쌀로 빚은 떡은 '부드럽게 입에서 스스르 녹는 쫄깃함'이다. 송천리 떡은 단지 이 차이 하나만으로도 맛있는 떡이다. 그러나 이 제대로 된 떡도 갓 했을 때 맛있지 운송 과정에서 맛이 많이 변한다. 강원도 여행길에 송천 떡마을을 코스에 넣을 만하다.  

오대산 약수 - 톡 쏘는 탄산의 맛

우리 조상들은 물을 귀히 여겼다. 물만 잘 마셔도 병이 낫는다고도 하였다. 허준은 [동의보감] 탕액편 그 첫머리에다 물[水部]을 구분하여 적었는데, 그 까닭을 "물은 처음에 하늘에서 생겼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어 "물은 일상적으로 쓰는 것이라 하여 사람들이 흔히 홀시하는데 그것은 물이 하늘에서 생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과 음식에 의해서 영양된다. 그러니 물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1 방아다리약수이다. 주변의 숲이 좋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약수이다.
  • 2 오대산에는 전나무가 많다. 월정사 입구에는 전나무 길이 있어 산책로로 인기이다.
  • 3 송천약수이다. 물통을 가져와 약수를 떠 담아 가는 사람들이 많다.


동네마다 약수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물에 대한 이러한 관념이 잘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약수(藥水)이다. 글자대로, 마시거나 몸을 담그면 약이 되는 물을 말한다. 그런데, 약수는 흔하다. 웬만한 동네 뒷동산에는 약수가 있다. 식수로 쓸 수 있는 지하수, 샘물 모두를 우리는 흔히 약수라 한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자연에 있는 물' 그 자체만으로도 약수라는 일종의 프리미엄을 붙여주고 있는 것이다. 범위를 좁혀 '마시거나 발라 병이 나았다고 소문이 난 약수'로 한정을 하면 그 숫자가 퍽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 기준만으로도 시군 단위로 한두 곳씩의 약수들이 있다. 이들 약수 중에 사람들이 특히 신묘하다 하여 먼 거리에도 일부러 찾아 마시는 약수가 따로 있는데, 이 약수들은 그 맛이 특이하여 마시면 온갖 병이 나을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이다. 첫입에는 톡 쏘고 이어 비릿한 쇳내가 나며 금속성의 쓴맛이 긴 여운으로 남는 물이다. 약수가 톡 쏘는 것은 탄산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며 비린내와 쓴맛은 미네랄의 맛이다. 물에 든 탄산과 각종 미네랄이 건강에 좋을 수는 있으나 과연 병을 낫게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약수'라는 개념 자체가 비과학적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특이한 맛이 나는 물"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의 약수'와 '숲의 약수'
우리 땅의 기둥은 백두대간이다. 백두산에서 뻗은 이 산줄기는 두류산,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에 닿고, 이어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으로 내닫는다. 오대산은 바로 위의 설악산과는 달리 바위가 없어 봉우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토산(土山)이다. 그러니 숲은 우거지고 계곡은 깊어 물이 풍부하다. 그 계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소금강이다. '작은 금강'이란 뜻이다. 소금강의 물줄기는 오대산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물줄기인 송천과 마주치는데, 그 송천을 따라 약수가 많다 하여 이 골짝 아래 마을의 이름 자체가 약수골이다. 송천을 따라 6번 국도가 나 있고 그 길 바로 옆에 송천약수터가 있다. 6번 국도는 진고개로 이어지는데, 오대산을 넘어 평창에 닿는다. 영서와 영동을 잇는 길 중에서 가장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고갯길이다. 진고개를 넘으면 오대산의 서쪽 사면이 편안하다. 전나무숲은 빽빽하고 계곡은 가파르지 않아 물 흐름이 느리다. 마른 계곡의 전나무 숲 깊은 곳에 방아다리약수가 있다. 동쪽 사면 급류 계곡의 송천약수와는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송천약수는 '물의 약수'라면 방아다리약수는 '숲의 약수'처럼 보인다. 송천은 쇳내가 강하고 탄산의 맛은 약하며, 방아다리는 송천에 비해 쇳내가 덜하고 탄산은 강하다.


때로는 달고 때로는 역겹고
약수는 이 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역하다. 미네랄이 넘치기 때문이다. 무색무미무취한 것이 물의 본디 맛이니 약수는 맛있는 물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맛없고 심지어는 역한 약수를 맛보러 찾아다닌다. 병에 걸려 '혹시나' 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맛이 어떤가 궁금하여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 대체로, 나이 드신 어른들은 이 약수를 거부감 없이 잘들 마시지만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서 뱉고 만다. 나이가 있으니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으나, 세상의 온갖 맛을 다 보았을 나이이니 그깟 쇳내며 쓴맛이 뭔 대수인가도 싶다. 그들의 입맛에는 달 수도 있을 것이다.

삼복에 약수를 마시는 풍습이 있다고도 전하지만, 약수의 맛은 가을에 더 좋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탄산과 미네랄의 맛이 강하게 난다는 뜻이다. 여름에는 비가 잦으니 아무래도 물 맛이 흐리고 탁해진다. 또 물은 온도에 따라 맛에 큰 차이가 나는데 찰수록 그 경쾌함이 잘 살아난다. 약수는 그 경쾌함 위에 쇳내와 탄산의 맛을 더 강하게 뿜어준다.